미국 하원은 2025년 5월 22일, 트럼프 대통령의 핵심 재정정책인 감세 및 군비 확대 법안을 당파적 표결로 통과시켰다. 이 법안은 법인세율 인하, 초과근무소득 면세, 국방예산 증액, 국경 통제 강화 예산 등을 포함하며, 바이든 행정부 시기의 친환경 인센티브를 전면 폐지하는 조항도 함께 담고 있다. 의회예산국(CBO)은 이 법안이 향후 10년간 3조8000억 달러 이상의 연방 재정적자를 초래할 것으로 전망했다.
재정지출의 확대는 전통적으로 단기적인 경기 부양 효과를 수반한다. 그러나 국채시장에서는 즉각적으로 금리 상승으로 반응했다. 채권 수급에 대한 우려는 단기 이슈가 아니라 구조적 문제로 전이되고 있다. 미국 정부의 재정정책이 반복적으로 정치적 교착 속에서 결정되고 있으며, 국가 신용과 정책 일관성에 대한 시장의 불신이 금리에 직접 반영되고 있다.
미국 재무부는 국채 발행 일정을 공격적으로 확대하고 있다. 20년물과 30년물 중심의 발행은 장기 재정 지출에 대한 조달 수단으로 활용되며, 2분기 중 장기물 순발행은 전년 동기 대비 40% 이상 증가했다.
수요 측면에서는 더 근본적인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외국인 보유 비중은 2015년 47%에서 2025년 1분기 29.3%로 축소됐고, 특히 일본, 중국, 사우디아라비아, 노르웨이 등 주요 보유국이 구조적으로 미국 국채를 매도하고 있다. 환율 방어, 외환보유다변화, ESG기준 충족, 미국 정치 리스크 회피 등의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며, 주요 투자 주체들이 미국 국채의 상대적 매력을 부정하고 있다.
국채 입찰에서도 신호는 명확하다. 최근 30년물 입찰에서 커버비율은 1.88배까지 하락했고, 낙찰금리는 시장 기대치를 10~15bp 웃돌았다. 응찰자 수요는 약화됐고, 프라이머리 딜러들은 장기 보유 부담을 이유로 입찰 참여를 줄이고 있다. 국채가 ‘안전하게 소화되는 자산’이라는 인식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통화정책과 재정정책은 분리되어 작동하고 있다. 연방준비제도(Fed)는 인플레이션 억제를 위해 5.5%의 기준금리를 유지하며 고금리 기조를 지속 중이다. 반면, 백악관은 확장적 재정지출을 기반으로 내수 수요를 자극하고 있으며, 정책 조율은 사실상 실종된 상태다.
이러한 정책 충돌은 시장참가자들에게 신호체계의 혼선을 초래하고 있다. 기대 인플레이션은 2.8%를 상회하고 있으며, 물가 연동 국채(TIPS) 기준 실질금리도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시장금리는 더 이상 기준금리나 수급에 의해 형성되지 않고 있다. 지금의 국채금리는 정책 간 정합성 붕괴에 따른 신뢰 프리미엄의 상실을 가격에 반영하고 있다.
금리 급등은 주식시장에 직접적인 하방 압력을 가하고 있다. 다우지수, S&P500은 각각 조정을 받고 있으며, 기술주 중심의 나스닥은 고PER 구조에 대한 디스카운트가 본격화되고 있다. 국채가 더 이상 주식의 헤지 수단으로 작동하지 않으면서, 전통적 자산배분 전략(60:40)은 기능을 상실하고 있다.
달러화는 강세를 유지하고 있지만, 이는 정책 신뢰에 기반한 자산 회피 흐름이지 경제 펀더멘털에 기반한 강세는 아니다. 달러 강세는 동시에 신흥국 외환시장에 부담을 전가하고 있으며, 통화 유출, 국채 금리 상승, 환율 불안정성을 유발하고 있다.
위험자산 전반에서는 크레딧 스프레드 확대, 부동산 자산의 디폴트 리스크 상승, 비상장 기업 가치 하향 조정이 동시에 나타나고 있다. 국채금리 급등은 단일 자산군 문제가 아니라, 금융 구조 전반의 가치 재평가 과정을 유발하고 있다.
5.1%의 30년물 국채금리는 기술적 상단에 도달했다는 평가가 시장 내에서 우세하다. 이에 따라 다수 기관투자자들은 분할 매수 전략을 채택하고 있으며, 듀레이션 분산과 금리 곡선에 기반한 리밸런싱을 병행하고 있다.
동시에 투자등급 크레딧 채권, 물가연동채, 단기 변동금리채를 활용한 인컴 중심 운용이 확대되고 있으며, 금리 리스크와 신용 리스크를 이중으로 분산하는 전략이 주류로 자리잡고 있다.
글로벌 자산 배분 구조도 재편되고 있다. 유럽·일본 국채로의 비중 이동, 금·인프라 채권 중심의 대체 자산 투자 확대, ESG 채권 중심의 구조화 상품 선호 증가가 동시에 나타나고 있다. 미국 국채의 상대적 위상이 약화되면서, 자산운용의 중심축은 다극화되고 있다.
미국 국채금리는 더 이상 단순한 채권 수익률이 아니다. 지금의 금리는 국가의 재정운용 신뢰, 통화정책의 일관성, 정치시스템의 기능 여부를 반영하는 구조적 가격 신호다. 이 신호는 자산시장, 외환시장, 글로벌 자금 흐름에까지 직접적인 영향을 주고 있으며, 투자자와 정책당국 모두에게 새로운 기준을 요구하고 있다.
금융시장은 안정성을 회복하지 않고 있다. 대신, 불안정성 자체를 설계 가능한 구조로 전환하려는 시도들이 이어지고 있다. 미국 국채는 더 이상 무제한 수용되는 기축 자산이 아니다. 정책 신뢰가 무너졌을 때 시장이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가장 먼저 보여주는 금융 지표로서, 국채금리는 지금 세계 금융의 본질적 좌표를 다시 그리고 있다.
자본시장팀 데이터투자 news@datatooza.com